오늘은 첨성대 포스팅에서 다하지 못한 불교와 첨성대 그리고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불교의 전래과정을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1. 신라의 불교 전래
신라는 삼국 중에서 불교가 가장 늦게 전래되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4C후반에 공인되었고, 신라는 6C초인 법흥왕 때에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불교가 공인되기 전에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기록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소지왕의 서출지 설화에 궁궐에 스님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미추왕 때 공주의 병을 스님이 고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도와 묵호자의 불교 전래 등 기록으로 보면 신라사회가 불교가 어느 정도 퍼져있었음을 알 수가 있어요.
2. 귀족들의 반대와 이차돈의 순교
하지만 신라의 귀족들은 불교 도입에 극렬하게 반대 했어요.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제사 지내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귀족들의 권력으로 인해 왕권이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도입으로 빠르게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는 고구려와 백제의 모습을 보면서 신라왕실은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이차돈의 희생적인 순교로 단번에 귀족들을 제압하고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3. 불교에 올인하는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후 조카이자 외손자인 정복군주 진흥왕은 불교발전에 온 힘을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황룡사를 창건하고 장륙존상을 만들었으며 본인이 직접 출가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의 아들들을 동륜, 사륜이라는 전륜성왕의 이름으로 짓기도 합니다. 여기서 전륜성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 밑에 있는 인간들이 사는 네개의 대륙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전륜 즉 바퀴 달린 마차가 갈 수 있는 땅은 모두 정복하는 전지전능한 왕입니다.
진흥왕 사후 진지왕(사륜)이 잠시 왕이 되었다가 폐위된 후 동륜의 아들 백정이 왕이 되니 그가 26대 진평왕입니다.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정반왕)인데 석가모니의 아버지의 이름이고, 어머니는 마야부인으로 석가모니의 어머니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식인 덕만(선덕여왕) 은 당연히 석가모니 즉 부처가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겠지요. 그만큼 신라왕실에서는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부처가 되고자한 선덕여왕
어릴 때부터 이러한 분위기의 왕실에서 자란 선덕여왕은 어떠했을까요. 사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을 왕족이나 귀족의 입장에서는 쉽게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전에도 아들이 없을 경우에 사위가 왕위를 계승한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반대가 심하였지만 진흥왕은 석가(부처)의 가문이라 그런지, 아니면 성골로 이어지게 하려고 그러한지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잇게 하였어요. 왕 위에 오르자마자 분황사를 창건하고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첨성대를 축조하였어요. 선덕여왕은 정말로 부처가 되기를 원하였을까요? 아니면 부처의 힘으로 자신과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였을까요?
5. 첨성대와 수미산
첨성대의 외양을 보면 불교의 수미산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첨성대는 기단부터 정자석까지 총 31개의 단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 땅을 한 개의 단으로, 또 하늘을 한 개의 단으로 계산한다면 모두 33 단이 됩니다. 이 33이라는 숫자가 도리천을 의미한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왜냐하면 도리천에는 33 개의 천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첨성대의 정자석의 네모 모양이 수미산 정상에 있는 네모모양의 도리천과 모양이 같아서 이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우연일까요? 아니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의도적일까요?
아무튼 선덕여왕 위의 여러가지 일들로 미루어 볼 때 첨성대의 축조는 천문관측은 물론 불교를 통한 왕권 강화의 방편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륜성왕을 넘어 부처가 되고자 한 여왕을 오늘 첨성대 앞에서 한번 생각해 봅니다.
6. 죽어서도 부처의 세성으로 가고자한 선덕여왕
선덕여왕과 관련된 지기삼사 설화중에 도리천과 관련된 누구나 한두 번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설화가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죽을 날짜를 예견하고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 장사 지내라고 유언을 합니다. 이에 신하들이 그곳을 몰라서 어디냐고 물으니 낭산에 장사 지내라 합니다. 신하들이 의아해하며 그곳에 능을 만들었는데 세월이 흘러 낭산 아래에 문무왕이 사천왕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불교의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이 있고, 정상에는 도리천이 있으니 예견대로 되었다 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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